디지털 시대, 범죄와 분쟁의 현장은 더 이상 물리적인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기 속에서 수많은 사건의 흔적이 발생하고 사라집니다. 이러한 디지털 흔적, 즉 ‘디지털 증거’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죠. 하지만 단순히 파일을 복사하거나 스크린샷을 찍는다고 해서 법정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증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훼손되거나 조작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죠.

이 글에서는 디지털 증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기술적인 방법을 통해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는 구체적인 노하우를 알려드립니다.

 

1. 디지털 증거, 왜 제대로 확보해야 하는가?

 

디지털 증거는 다음과 같은 특징 때문에 그 확보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 취약성: 디지털 데이터는 삭제, 수정, 포맷 등으로 인해 매우 쉽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실수로 파일을 열거나 다른 파일을 저장하는 것만으로도 증거 가치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 휘발성: 램(RAM)에 저장된 데이터, 네트워크 연결 정보 등은 전원이 꺼지면 사라지는 ‘휘발성’을 가집니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원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 증거 능력: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무결성(Integrity)’과 ‘신뢰성(Reliability)’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즉, 증거가 확보된 시점부터 법정에 제출될 때까지 어떠한 조작이나 훼손 없이 원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2. 디지털 증거 확보를 위한 3단계 프로세스 (기술적 상세 내용 포함)

 

디지털 증거 확보는 단순히 파일을 복사하는 행위를 넘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절차를 따르는 전문 영역입니다. 다음의 3단계 프로세스를 기억하세요.

 

1단계: 현장 보존 및 식별 (Preservation & Identification)

 

이 단계는 디지털 증거가 훼손되지 않도록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전원 관리 원칙:
    • 전원이 켜져 있는 경우: 갑자기 전원을 끄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휘발성 데이터를 잃게 되기 때문이죠. 먼저 스크린샷을 찍어 현재 실행 중인 프로그램, 시간, 네트워크 연결 상태 등을 기록합니다. 그 후, 네트워크 연결을 끊어 외부로부터의 접근을 차단하고, 포렌식 전용 도구를 사용하여 RAM 덤프(메모리 이미지)를 추출합니다.
    • 전원이 꺼져 있는 경우: 절대 전원을 다시 켜지 마세요. 전원을 켜는 순간 운영체제가 부팅되면서 수많은 파일이 생성, 수정되어 증거가 훼손됩니다. 이 상태 그대로 전문 포렌식 장비나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 증거물 식별 및 라벨링:
    • 모든 디지털 기기(PC, 스마트폰, USB, 외장하드 등)를 식별하고, 각 증거물에 고유한 번호를 부여합니다.
    • 확보 시각, 장소, 확보자 정보 등 필수 정보를 기록한 라벨을 부착하여 증거의 연관성을 명확히 합니다.

 

2단계: 디지털 증거 복제 (Acquisition)

 

이 단계는 원본 증거를 훼손하지 않고 ‘디지털 사본’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일반적인 복사-붙여넣기 방식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 이미징(Imaging) 기법:
    • 하드 드라이브, USB 메모리 등 저장 매체 전체의 비트(bit) 단위 데이터를 그대로 복제하는 기술입니다. 즉, 사용자가 삭제한 파일, 숨겨진 영역(슬랙 영역), 파일 시스템 정보 등 모든 데이터를 빠짐없이 복사합니다.
    • 이때 ‘하드웨어 쓰기 방지 장치(Hardware Write Blocker)’를 반드시 사용해야 합니다. 이 장치는 포렌식 수사관이 원본 저장 매체를 분석하는 동안 어떠한 데이터도 쓰여지지 않도록 물리적으로 보호해 줍니다.
  • 도구 활용:
    • EnCase, FTK(Forensic Toolkit), X-Ways Forensics와 같은 상용 포렌식 소프트웨어는 이미징 기능을 제공하며, 비전문가를 위한 ‘Guymager’, ‘dd’ 등과 같은 오픈소스 툴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 dd 명령어 사용 예시: dd if=/dev/sda of=/media/forensics/sda_image.dd bs=4M conv=noerror,sync
      • if=/dev/sda: 원본 저장 매체 (예: 첫 번째 하드디스크)
      • of=/media/forensics/sda_image.dd: 저장될 이미지 파일 경로 및 이름
      • conv=noerror,sync: 에러가 발생해도 중단하지 않고, 비트 단위로 완벽하게 복제하도록 지시하는 옵션

 

3단계: 무결성 검증 (Integrity Validation)

 

이 단계는 확보한 디지털 증거가 원본과 완벽하게 동일함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입니다.

  • 해시(Hash) 값 계산:
    • 해시 함수(SHA-256, MD5 등)는 어떤 데이터든 고유한 ‘지문’을 생성하는 알고리즘입니다. 원본 저장 매체와 복제된 이미지 파일의 해시 값을 각각 계산하여 서로 비교합니다.
    • 예시:
      • 원본 디스크의 SHA-256 해시 값: a1b2c3d4e5f6g7h8...
      • 복제된 이미지 파일의 SHA-256 해시 값: a1b2c3d4e5f6g7h8...
    • 두 해시 값이 단 하나의 비트라도 다르면 완전히 다른 데이터로 간주됩니다. 따라서 두 해시 값이 일치해야만 증거의 무결성이 입증됩니다.
  • ‘HashDeep’과 같은 도구 활용:
    • HashDeep은 여러 파일과 디렉토리의 해시 값을 재귀적으로 계산하고, 그 목록을 파일로 저장하여 나중에 검증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는 오픈소스 도구입니다.

 

3.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때

 

위의 기술적인 내용이 복잡하게 느껴진다면, 일반인이 직접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오히려 증거를 훼손할 위험이 있습니다.

  • 스마트폰 포렌식: 잠금 해제, 삭제된 카카오톡 대화 복구 등은 전문적인 지식과 고가의 장비를 필요로 합니다.
  • 클라우드/서버 포렌식: 로그 기록, 삭제된 데이터 복원 등은 서버 운영 환경과 네트워크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결론: ‘증거는 확보가 아닌 보존이다’

 

디지털 증거 확보는 ‘데이터를 어떻게 얻을까’가 아닌, **’데이터가 훼손되지 않도록 어떻게 보존할까’**의 문제입니다. 이 글에서 설명한 기술적인 원칙과 도구를 이해하고 적용한다면, 디지털 분쟁 상황에서 여러분의 주장을 뒷받침할 강력하고 신뢰성 있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잡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반드시 디지털 포렌식 전문 기업이나 기관에 의뢰하여 안전하고 법적으로 유효한 증거를 확보하시기를 권장합니다.